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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413] 12일_비에게
    100일 내 방으로 출근합니다 2021. 4. 13. 17:51

    월요일, 작은 아이 학교로 봉사를 나갔다. 학부모 폴리스라고 아이들 하교 시간에 맞춰 학교 근처 순찰을 도는 일이었다. 

    마침 타이밍이 좋지 않았는데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 다른 초등학교에서 선생님과 1학년 아이들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던 것. 

    아이의 학교도 비상이 걸렸다. 

    하교 시간에 맞춰 아이를 마중 나온 학부모들은 학교 입장이 통제 되었고 교문 앞에서 아이를 기다려야 했다.게다가 하교 시간에 맞춰 봄비가 내리기까지 했는데...

    학부모의 학교 출입을 통제해 달라는 학교측의 부탁에 같은 학부모임에도 뻘쭘 한 자세로 학부모 폴리스 조끼를 입은 채 교문에 서 있었다. 

    제법 빗방울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자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1층 로비로 삼삼오오 나오기 시작했다. 교문에 선 부모들은 저 멀리 로비의 아이들을 향해 비가 오니 빨리 자기 쪽으로 뛰어 오라고 손 시늉을 했다.

    그 와중에 손주를 데리러 오신 듯, 할머니 한분이 교문 안으로 성큼 발을 내 디뎠다. 

    "할머니, 지금 코로나 때문에 학교 건물쪽으로는 들어가시는 게 안되요." 

    "알아, 비 때문에 그러지. 애들이 우산을 안가지고 갔어." 

    "비 맞을까봐 걱정 되실텐데 죄송해요. 지금은 그래도 빗줄기가 약해서 많이 맞지는 않을거예요. 할머니 보면 냉큼 오겠지요."  

    "그럼 비를 맞으라고? 더러운데." 

    할머니에게 딱히 답해 드릴 문장이 떠오르지 않아 머쓱하니 서 있다가 손주가 몇학년인지, 남자 애 인지, 여자 애인지, 무슨 옷을 입었는지, 그러면 제가 로비로 가서 아이에게 서둘러 할머니께 가라고 이야길 하겠다며 걸음을 옮겼다.

    할머니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비는 하늘에서 아래로 토독 토독 조심스런 여행을 계속 할 것 같았다.
    그냥 그런 비를 바라보기가 민망했다. 


    할머니의 손주로 보이는 학생을 찾지 못했다. 소득없이 교문으로 돌아가보니 할머니는 그 사이 손주와 만났는지 보이지 않았다. 


    로비에서 교문 까지 우산이 없는 아이들이 빠른 걸음으로 뭉쳐 나오고 있었다. 


    남자 아이 하나가 입었던 잠바를 휙 벗어 머리 위로 뒤집어 쓰고는


    "오랜만에 비 좀 맞아볼까!" 


    호탕한 한마디 허공으로 날리더니 교문 밖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친구로 보이는 몇 아이들도 

    "야! 같이 가" 하더니 들고 있던 핸드폰을 주머니에 서둘러 찔러 넣고 따라 달렸다.


    비가 예전과 같지 않은 세상이다.

    비가 더러운 것들을 떠 안고 세상으로 내리게 된 게 누구 때문인지 알기에, 그냥 비 한테 미안하고

    비 맞고 가는 아이들한테도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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