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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반 일리치 <텍스트의 포도밭>
    나의 서재/독서 후기 2020. 12. 8. 11:16

     

    <텍스트의 포도밭>이란 책을 집어 든 것은 '나는 왜 읽는 걸까?'에 대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 주석을 제외하면 190여 페이지, 본문의 양 만큼 뒤에 딸려있는 주석 부분을 보았을 때 차마 예상하지 못했다. 이해를 위해 고심할 것도, 찾아볼 것도 많아 한달이란 기간 읽는 다는 것이 매우 촉박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저 책 한권일 뿐인데 말이다.

    성직자이자 작가인 이반 일리치의 이 책은 유럽에서 알파벳으로서의 표음문자가 개발되기 전, 라틴어가 텍스트의 기본이 되던 시기, 수사들의 읽기를 주요하게 다룬다. 또, 후반부에선 표음문자가 개발된 후 종이의 보급, 대량인쇄의 발달로 '책'의 개인소장의 시대가 열리면서 텍스트를 구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목표의 변화에 대해 논한다. 책의 여정에 12세기 이전의 인물인 수사 '후고'의 책 <디다스 칼리콘>가 중요 모티브가 되었다. 책의 여행에 앞서 독자에게 제시된

     

    "Omnium Expecdorum Prima est Sapientia" - "구해야 할 모든 것 가운데 첫째는 지혜다"

     

    라는 문구는 독서를 통해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만 하는 목적지를 상상하게 한다.

    알파벳이 대중, 개인의 배움에 통용되기 이전의 시대, 라틴어로 공부하던 수사들은 눈과 귀, 입, 손을 사용하여 텍스트를 육화하는 독서법으로 배움을 이어 나갔다. 텍스트를 눈으로 읽고, 낭독하며, 그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필사를 통해 기억의 궁전을 만든다. 그들에게 배움이란 선을 이루기 위한 지혜를 구하는 과정이었다.  세상의 만물, 자연을 은유한 텍스트를 통해 세상의 여기저기를, 마치 포도밭을 거닐며 탐색하고 탐험하듯 텍스트를 곱씹었다. 수사들은 그리하여 자신의 공부하는 생활방식(Vita), 지혜 (Doctrina), 말(Verbo), 모범 (Exemplo)을 통해 공동체를 "교화"하는 것이 그들의 특별한 임무라고 여겼다. 후고가 생각하길 수사는 교회 밖 사람들과 동등했다. 수사의 읽기의 모습을 통해 드러난 모습을 교회 밖 사람들은 자유롭게 흉내내며 함께 선을 이루는 생활방식이 이뤄지길 후고는 바랬다. 그 당시의 읽기란 공공선을 위한 지혜를 구하는 과정 자체였다. 

    알파벳이라는 새로운 언어적 테크놀로지가 도입되며 라틴어를 쓰는 계층은 평민과는 분리된다. 전문직종이 생겨나고, 신의 언어를 기록한 라틴어와 달리 알파벳은 사람들의 언어를 기록하고 생각을 기록하는 텍스트로 자리잡게 된다. 종이의 발명과 대량인쇄의 도입으로 휴대용 '책'의 출판이 가능해졌다. 개인들의 주장, 생각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다양한 책 중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필요에 맞는 텍스트를 구하게 된다. 책이란 곧 '광산, 지식의 보고에 가까운 눈으로 읽는 텍스트가 되었다. 진리를 찾던 독서의 목적성은 지식의 수집으로 방향성을 튼다. 독자들을 위해 책은 주제에 맞는 목차를 설정하고, 챕터라는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또 주석은 본문과 분리되어 책 후면에 따로 모이게 되었다. 더욱 손쉽게 정보를 구할 수 있는 색인의 등장도 이 즈음 부터다. 신의 말씀인 라틴어 시절의 텍스트들과 달리 개인의 주장과 사고가 출판 되며 저자가 곧 창조자가 된다. 순례로서의 경건한 독서는 이제 책상에서 이루어지는 학문적이고 관념적인 독서가 되었다. 수사들의 독서가 지혜의 항구에 정착하기 위해 돛을 내리는 행위였다면, 현대의 독서는 개인의 사고와 욕망들이 부유하는 망망대해 에서 닻을 내리지 않고 이 사고에서 저 생각으로 떠 도는 유령선과 같다고 책에선 말했다. 

    지혜, 선을 구하기 위한 여정으로서의 그 옛날 옛적 수사들의 독서를 바라보며 '나는 왜 읽는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지 않을 수 없다. 

    다양한 책을 구할 수 없던 어린시절이었다.  아빠 신문 사이에 일주일에 한번 끼워져 오던 어린이 신문을 오매불망 기다리던 딸을 위해 엄마는 방문 판매사원을 통해 목돈을 들여 자연백과전집을 구매했었다. 집 안에 오래 두고 읽을 거리가 생겼다는 기쁨에 책의 실밥이 틀어질 때까지 보고 또 보고 했던 그 때 내 독서의 가장 큰 기쁨은 책을 통해 가보지 않은 곳으로 떠나는 상상 여행이었다. 북극 곰, 물범, 다양한 고래들을 보며 북극 저 너머, 바다 저 깊은 곳을 책이 닳도록 보고 또 삽화를 따라 그리고, 친구들에게 달뜬 얼굴로 설명하던 기쁨을 기억한다. 아마존, 남아메리카 고산 지대, 인도의 뱅갈, 몽골 사막을 책을 통해 탐험하며 마음으로는 그 세계 생물들을 실제로 만나게 될 기대로 설레였던 것도 같다.

    중고등학교 시절의 독서란 시험대비용 문학을 섭렵하는, 성적을 위한 도구화된 독서였다. 지혜와 탐험의 독서로부터 멀어진 이 때엔 책의 글자를 꾸역 꾸역 머리에 넣기 바빴던 것 같다. 대입을 치룬 뒤, 입시의 억압으로부터 급격히 탈출했다는 해방감은 무서운 사춘기 늦바람과 합이 맞아 세계의 탐구보다는 개인적 놀이 욕구에 나 스스로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입수시켰다. 고로, 지혜의 추구는 고사하고 지적인 활동으로서의 독서와는 담쌓고 지내는 시기였다.

    이후 직장을 다니고, 얼렁뚱땅 연애와 결혼, 출산과 육아를 거치며 '나'란 사람의 수준에 대해 심각히 고민하게 되었다. 나의 수준, 마음의 그릇 등등을 고민하던 그 시기 무작정 '책'을 집어 들어 읽기 시작한 것 같다. 똑똑해 지고 싶었던 것도 같고, 내가 나로 살아가지만 이게 정말 나 자신인지도 알수 없고 물어볼 곳도 딱히 없기에 책에서나마 열쇠를 얻고 싶었던 것도 같다. 아마도 어린 시절 눈에 램프 반짝 거리며 책을 탐닉하던 경험이 나를 다시 책으로 이끈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어른이 되었어도 나는 어린 그 때처럼 책장을 넘기며 설레였다.

    그러나 30대 이후의 지난 10여년의 독서생활에서 얻은 것도 많지만, 잃은 것 또한 비견할 정도로 많았다. 독서를 통해 내가 잃은 것들에 대한 반추가 이 책을 집어 들게 끔 한 "나는 왜 책을 읽는가?"란 자문을 끌어올린 것이기도 하다. 어린시절 설레였던 독서를 기대했던 어른은 내달려 가는 시간을 부여잡듯, 감정 소비로 낭비했던 지난날에 보상이라도 하듯  빠름 빠름 독서에 집작하였다. 심한 허기에 과식하면 탈 나듯, 지식 습득에 달려들며 '나만 옳다'는 비틀어진 자기애가 폭발 직전까지 갔던 것 같다. 적립된 지식들은 말을 잘 하기 위한 도구로 왕왕 쓰이곤 했지만,  그야말로 말에서 끝날 뿐 행동으로 이어지진 못했던 것이 문제였다. 점차 획득한 지식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 보단, 날카로움과 공격의 의도로 쓰는 언행불일치의 대표적 사례로서의 인간인 '나'를 타인의 시선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책 읽는 기쁨, 폭발할 것만 같던 자기애는 사그러 들고, 사람들과 거리를 두게 되었다. 책은 나에게 구실에 불과했던건가, 결국 책이란 나에게 무엇인가, 내 삶의 방향에 대해 근본적으로 고민해 보고 싶었다. 

    발음도 생소한 라틴어들을 발음 그대로 게재한 <텍스트의 포도밭>은 단어를 잊지 않으려면, 문장을 해독해 이해 하려면 한땀 한땀 읽어 내려갈 수 밖에 없다. 오래 전 수사들이 읽었던 방식 그대로는 아니지만, 오랜만에 연구하고 기억하려 손으로 써보고, 앞으로 돌아가 다시 읽기를 반복하며 소화 시킬 때 까지 오래 걸린 책이다.

    책에 주요 등장인물인 후고, 그리고 이 책의 저자인 이반 일리치는 책이 사색과 탐구의 도구가 아닌 지식 습득과 학습의 도구로 영향력이 기울어져 통용되는 것이 우려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오래 곱씹는 읽기 활동을 통해 세계를 탐구하고, 지혜를 구해 타인의 모범이 되려 책을 읽었던 오래전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것이다.

    "나는 왜 책을 읽는가?" 자문하는 나와 같은 현대인들에게 읽는 활동을 통해 추구하고 만들려고 하는 자신의 기억의 궁전, 자신의 이스토리아(히스토리)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선물로 준 것만 같다. 

    후고가 죽은 이후 긴 시간을 거쳐 지금 여기는 차고 넘치는 정보의 세계로 급변했다. 자고 일어나면 새 모습으로 진화하는 세상의 속도는 정신이 없다. 자신의 사상과 사고, 욕망을 표현하려는 개인들에게 기회와 시장은 다양해 진다. 그 틈에서 나는 '많이 알지 못하면 뒤쳐지거나 관계가 끊어질' 것만 같은 조바심에 이것저것 많이 읽는 것에 전력했지만, 그것이 세계와의 연결을 되려 약화 시키고 있음을 경험했다. 세상의 속도에 맞추기엔 내 속은 너무 비어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오히려 휩쓸리고 말지.

    돌아가는 세상을 멈추거나 뒤로 후진시키자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수사들의 읽기 활동을 모범삼은 독서는 아마 세상의 속도와는 별도로 나만의 속도와 방향을 찾아줄 것만 같다. 책을 통해 이스토리아를, 기억의 궁전을 만들자. 지혜를 탐구하고, 선을 추구하자. 그러면, 그때에  내 지혜의 빛(LUNA)으로 기억의 지도를 만들어 설레이며 세상을 탐구하고 탐험을 지속하자. 천천히 가자. 급히 읽지 말자. 책의 세계를 거닐다가 주위를 둘러보자. 나 말고 LUNA를 뿜고 있는 이들, 나와 비슷한 속도로 걷고 있는 사람들과 새로이 연결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의 지도를 건넬 수도 있고, 궁전으로 초대할 수도 있을 것이고. 또 한편, 그런 독서생활이 개인의 욕망들이 넘실대는  무척 빠르고 거센 파도가 치는 세계에서 휩쓸려 난파되지 않도록 나라는 배를 지켜주는 깊고 묵직한 닻이 되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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