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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25] 39일_ 즉흥 등산100일 내 방으로 출근합니다 2021. 5. 26. 23:35
오전 10시 30분 경,
장바구니를 들고 집 앞 마트로 향했다.
밤을 거쳐 아침까지 내린 비가 막 그친 참이었다.
미세먼지와 황사가 곧 있을 거란 소식이 있었지만
콧 속에 들이차는 바람은 시원하고 맑았다.
킁킁, 차가운 물냄새를 콧속에 넣으니
조금 더 걷고 싶었다.
목적지였던 마트를 지나쳐서
요리조리로 골목을 탐험한다.
마트의 뒷길로 더 가다보면 산으로 통하는 등산로가 나온다.
나는 오늘 스니커즈를 신고 나왔다.
손엔 장바구니와 지갑이 들려 있다.
그리고 밝은 색의 면바지를 입고 나왔다.
전혀 등산과는 어울리는 복장이 아니다.
그럼에도 발길은 갑자기 산길을 향하기 시작했다.
Covid-19로 인해 만나는 사람, 활동 반경, 사회 생활이 많이 헐렁해 진지 오래.
밖으로 돌았어야 할 시간과 경험을
집 안에 채워넣고
비록 눈에 띄진 않지만
그것들을 다채로운 방법으로 구분하고 나누어
계획적으로 살고 있는 요즘의 나다.
간혹 짜여진 식단대로 요리하기 싫은 날
배달어플을 이용하는 모습이
계획의 틀로부터의 소심하고도 유일한 일탈일 뿐.
불확실의 시대에 계획에 나를 맞추는 것이
불안정한 나를 지탱하는 방법이라 여겨
그 틀을 부여잡고 산다.
그런 나에게 이와 같은 ‘즉흥’적인 움직임은
실로 오랜만이다.
아무래도 공기 때문일거라 여긴다.
마스크도 감히 막지 못한
수분 가득한 파아란 공기.
아무도 없는 산길을 두려움 없이 올랐다.
마르지 않은 땅 깊이 디뎌지는
신발 걱정을 하지 않았다.
온라인수업 받는 아들들 점심시간 맞춰
장보고 요리하는 일과도 좀 늦어짐 어때.
그런거 뒤로 미루고,
내 안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한 날 이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노란 창포꽃 무더기를 만났다.
누군가 심고 관리하는 보기좋게 키 맞춰 자란 등산로 초입의 노란 꽃들.
그들을 바라보다 한 곳에 매달린
애벌레를 만났다.
단정하게 심어진 창포꽃 사이에 나타난
애벌레 하나,
그 녀석이 창포꽃을
더 살아있는 꽃처럼 보이게 한다.
최근 계획적 내 삶의 갑툭튀,
오늘의 즉흥 등산이 애벌레를 바라보는 그때 나에게 신호를 보냈다.
반듯하게 지내다가 가끔 오늘처럼 튀어 나오라고 말이다. 삶의 공기가 달리 느껴질 거라나.'100일 내 방으로 출근합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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